탐정소설의 진정한 사명 도구라 마구라

                                         유메노 큐사쿠

탐정소설의 열기가 하양세로 접어들고 있다. 일찍이 발흥하던 당시, 작자와 독자가 열광해서 땔나무를 던지고 기름을 부은 거대한 불길은, 지금에 이르러선 그야말로 차가운 재가 되고 있다.

  일찍이 자연주의 문예가 그랬던 것처럼…….

  자유민권 사상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의 취미경향이 이렇게 결국 바닥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메이지 유신〔일반적으로 1853-1877〕이래, 서양문화의 수입에 영향받아 일본인의 취미가 급격하게 저하되어 왔다. 이전에는 기피되고 경멸되던 육체적 성 묘사나 불륜의 세태가, 자연주의의 수입이래 역전되기 시작했다. 인간이 불합리하게 여겨지고 금수의 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새로운 경향이었다.

 
 그런데 메이지 말기부터 다이쇼〔일반적으로 1912-26〕이후에 보이는 탐정소설의 유행은, 그런 경향을 더욱 저급하고 심각한 상태로 만들었다. 더욱 자극적인 육체적 성 묘사나 노골적인 범죄심리에 깊이 빠져든 취미를 일본인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수단이 본격, 변격의 모든 방향으로 급속히 분석되고 분과分科되며 단순화되고 평범화되는 가운데, 그 각 분과 마다 전문적으로
막히고 싫증나고 경시되며 망각되어 가고 있다.

 

  탐정소설은 그러니까 바로 지금 자신의 마지막 아성으로 도망치고 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탐정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트릭에 있다. 수수께끼의 흥미에 달려 있다. 그런 흥미에 의해 독자를 최후까지 잡아끌고 가서, 여기에 의외의 해결과 만족을 주는 것이 탐정소설이 지닌 유일 무상의 신성한 본령이다. 그러므로, 탐정소설은 생명정조금전보석종잇조각 등의 인간이 갖고 싶어 난리치는 부분의 가장 저급하고 천박, 저속한 물건을 그 트릭, 수수께끼의 핵심으로서 전체 스토리의 흥미를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탐정소설은 예술이어서는 안된다.

  에로그로난센스유머 등과 같은, 수수께끼 이외의 풍미를 포함시키는 것은 탐정소설의 옳바르지 못한 타락의 길이다. 모험신비괴기변태심리 등등등의 이름을 얻을 수 있는 소설은, 탐정소설계의 외도, 기생충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것은 모두, 이 참된 탐정소설계의 비상시를 맞이하여, 변격〔모험SF괴기ᆞ환상 소설 등을 가리킨다〕이란 이름 아래 강력한 설사약으로 탐정소설계로부터 추방되어야만 한다.

 
 
탐정소설은 어디까지나 탐정소설로서 스토리 중심의 사명을 지켜나가야만 한다. 단순한 수수께끼의 줄거리만을 지켜가는 소위 본격〔독자에게 모든 단서를 제공하고 글에 허위가 없으며 이성적인 해결이 이루어지는 장르〕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본격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현재 일본에 극소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뿐인가. 그 소수의 사람은 결국「1인 2역」「탐정이 바로 범인」「가짜 알리바이」등등의 지극히 적은 소수 트릭이 존재할 수 있는 만큼의 수 밖에 탐정소설은 쓸 수 없는 것으로 이론상 되어 있다. 그 성 안으로 들어오는 물이 끊긴데다, 적이 이곳의 사정을 환히 꿰뚫어보고 있는 비좁은 아성에 한 사람인가 두 사람밖에 없는 탐정소설가는 성을 굳게 닫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 성곽 바깥쪽을 어슬렁거리는 변격의
양다리 걸친 무사를 향해서 큰 소리로 선고하고 있다.


「본격 이외의 것은 탐정소설이 아니야」


 
……라고……. 대세를 이루는 양다리 걸친 무사인 변격 탐정소설가 무리는 이에 대하여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다. …… 확실히 그대로다……동시에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라고 하는 말을 입 안에서 망설이면서 쥐죽은듯 조용히 변함없이 식수가 풍부한 성곽 바깥쪽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탐정소설계는 현재, 참으로 사면초가의 막다른 곳에 놓여 있다. 원군이 올 희망이 없는 고립된 성의 불안한 상태에 있다.

 
 불교도 그 교의가 일본인의 두뇌에 의해 급속히 분석되어 너무나도 다양한 종파를 분기되고 너무나도 방편화되어 단순화된 결과, 결국 오늘날 처럼 타락한 막다른 곳에 이른 시대를 맞이하였듯이…… 등등등…….

 

  이상과 같은 여러 현상을 매일 매일 보고 들은 우리들 탐정소설 팬은 엉겁결에 장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탐정, 엽기소설계에 있어서 모든 신진 작가들도 무의식중에 한숨을 쉬고, 위축되고, 주저하여 사망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특별히 놀라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학 정도의 교양밖에 지니지 않은 탓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앙 문단의 장엄함으로부터 멀리 벗어난 산 속에서 퇴화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그뿐이랴 우물 안 개구리 혹은 장님, 뱀을 겁내지 않는 무모한 류일 것이다. 이런 대세에 대해 필사적으로 반격해 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댄다. 소리뿐이라도 좋다「탐정소설은 막다른 골목에 놓인 것이 아니다」라고 절규해 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사람들의 자유 분방하고 대담한 활약을 기대하고 싶어졌다. 웃어도 좋다. 미움받아도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탐정소설계를 위한 것이라고 깊이 믿게되었다. 필자는 감히 말한다.

 

  소위, 본격 탐정소설이라는 것은 탐정소설의 원시적인 형태를 전통으로 하는 순수종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인가 200년 전에 유행한 모든 종류의 문예 속에서 진화하여 태어난, 보다 새로운, 보다 깊은, 보다 아픈 문예다. 모든 예술의 전통 정신과 형식으로부터 이탈하여 인간의 심리를 보다 한층 깊게, 있는 그대로 후벼파서 분석하고, 생명을 위태롭게 만드는 극약화, 독약화되고, 더 나아가 원자화되고, 전자화까지 하기 위해서 태어난 예술계의 부모를 닮지 않은 자식이다. 예술의 수호신을 모독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반역 예술이다. 
 
 옛날의 예술은 의상이 가져다주는 미를 탄미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일은 다 한 것이었다. 그것이 더 나아가 그 의상을
벗겨 육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전념하는 근대 예술로까지 진화했다. 그것이 한발 더 나아가서는 그 육체를 절개하여 내장을 끄집어내고, 해골을 표백하고 혈액에서 분뇨까지 분석하고, 그 괴기미·추악미에 전율하려는 것에서 탐정소설의 사명이 태어났다.

 
 이제까지의 예술은 망원경이나 사진기, 또는 현미경의 렌즈밖에 없었다. 단지 초점을 만드는 것이 예술의 사명이었다.

 
 
이에 반해서 탐정소설의 사명은 프리즘을 이용하여, 구식예술에서 초점이 만들어진 태양의 하얀 빛을 모독하고, 조소하고, 분석해서 일곱가지 색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첨단예술이라 할 수 있다. 종래의 심리 묘사는 평범한 심리 묘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장래의 심리 묘사는 그야말로 진실한 심리 바로 그것의 해석이고 종합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취미·경향으로 인류를 이끌기 위해서, 일찌기 탐정소설은 종래의 예술이 금과옥조로서 사수해 온 미학상의 여러 조건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일축했다. 그 대신에 예술이라 자칭하는 것도 부끄러운 천박하고 저속한 수수께끼의 매력을 가지고 대중의 주의를 끌었다.
 
  그렇게 해서 예로부터 인류가 만들어 온 각종 문화 가운데서도 가장 추악하고 용렬한 이 과학문명의 내용을 사람들이 반성하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쭉쭉 진화하고 분화하기 시작했다. 모든 변격적인 신양식을 번식시켜 대중의 심리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 닭이나 돼지, 사과나 달리아〔원산지가 멕시코인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가, 그 순수종에서 진화해서 그 시대시대의 취미문화를 상징하고 대표하면서 점차점차 복잡하고 극단적으로 되어 간 것 처럼……. 그렇게 해서 그 순수종의 가치를 사람들에게서 잊게 한 것 처럼…….

 

  그러므로 말한다. 순수종은 참으로 귀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우리들은 순수종의 맛을 때때로 회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솔직히 오늘날 순수종은 그다지 아름다운 것도 좋은 맛도 없다. 그
섬유는 너무나 단단하고, 그 맛은 너무나도 단일하여서 예스럽다. 본격 탐정소설의 진정한 가치는 이미 고전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 수수께끼들의 사명도 이미 오랜 옛날의 이른바, 문예로부터 대중의 흥미를 빼앗아갔을 때 끝나버렸다. 그 트릭, 수수께끼들의 진정한 가치는 대영박물관에라도 보관해두지 않으면 빛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말한다. 말레이 반도에 잔존하는 들닭만이 진정한 닭이다. 그 밖의 브라마〔인도 원산지 닭의 한 품종〕, 오핑턴〔영국 품종〕, 안달루시안〔지중해가 원산지로 레그혼과 닮음〕, 플리머스 록〔미국에서 개량〕, 미노르카〔지중해 미노르카 섬에서 영국으로 유입〕,
코친〔중국 원산지 닭의 한 품종〕, 레그혼〔이탈리아가 원산지로 일본에서 식용으로 쓰이는 레그혼은 대부분 백색 레그혼의 교배종이다〕류는 닭이 아니다. 미즈타키〔닭을 주 원료로 물을 끓이거나 조려 먹는 냄비 요리〕는 물론 스키야키〔고기와 파 등을 넣고 간장으로 맛을 낸 냄비 요리〕에도 치킨라이스에도 로스치킨으로도 만들어서는 안된다. 같은 철망 안에서 같은 모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라고 하는 선언에 대해서 로마 교황에 대한 신교도와 같은 위축이나 절망을 신진 작가 여러분이 느낄 필요는 털끝만큼도 없다.

 

  닭의 인류에 대한 진정한 사명은 그 변종에 있다. 식용 닭은 알이 적고, 채란용 닭은 육질이 좋다. 그것으로 된거다.

 
 마찬가지로 탐정소설의 참된 사명은 그 변격에 있다. 수수께끼도 트릭도, 명탐정도 뛰어난 범인도 필요없다면 버려도 좋다. 신비
괴기모험변태심리 등등등의 무엇이든지 좋다. 우리들은 이미 태양의 하얀 광선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스펙트럼의 일곱가지색 빛만으로는 이미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자외적외선은 물론이고 그 가운데 걸친 암흑의 선線의 내용까지 분석하여 무엇인가 전율적이고 절대적인 가공할 독선毒線을 만드는 숨겨진 원소를 확보하지 않으면, 양심적으로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없게 된 것이다. 철저하게 숨은 비밀을 밝히고 폭로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만족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탐정소설의 사명은 이제부터이다.

  전세계는 아직도 그러한 탐정소설의 처녀지다. 아무 것도 아닌 안부를 묻는 편지의 펜글씨 꺽인 부분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부르는 살인의 저주가 분석되고, 새 손수건의 접힌 부분에서 손수건 주인의 불륜 행위 현장이 영화를 보듯 드러날 터이다.

 
 이 양심없고 염치를 모르는 유물 공리 도덕의 세계는 도처에 탐정취미의 스파크가 튀며 일어난 새로운 예술의 오존 냄새가, 생생하게 뜨거운 열기로 전해져올 터이다.

 

  신진 작가들이여 의심하고 두려워하여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다.

  일본민족의 취미는 확실히 빠르게 저하되어 가고 있다. 육체적 성 묘사로부터 범죄로―― 문예취미로부터 탐정취미로―― 유물과학으로부터 유심분석으로―― 양심으로부터――양심을 저버리는 것으로――.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탐정소설은 양심의 전율을 맛볼수 있는 소설이다. 모든 오만한 공리도덕, 과학문화의 외관을 긁어 부수고, 그 맨 밑바닥에 자리한, 두려움에 바둥거리고 있는 곤충과 같은 인간성――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양심을 절대적인 공포로 폭로해 간다. 그 통쾌함, 심각함, 처참함을 맛보아 만족할 때까지 맛보게하는 독서물이 아닐까?

 그러므로 탐정소설은 인류가 유물문화로부터 유심문화로 전향해 가는 과도기적 시대의 애처로운, 자신을 되볼아본 심리의 산물이 아닐까? 그렇기에 현대의 탐정소설이 그정도로 철저하게 양심의 전율을 다루지 않고, 우리들이 또 그 정도로 깊이 파고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본래 탐정소설의 사명을 놓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것 뿐의 이야기가 아닐지……라고…….

 

  끝으로 탐정소설이 문예인지 아닌지는 책임 지울 바가 아니다. 어쩌면 향수의 화학방정식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미인의 엑스레이 사진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제재의 선택은 무한히 자유로울 터이다. 그러므로 그 선택자의 개성이 극단적으로 심각, 강열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것으로 좋다…… 그것만으로 좋다.

 

 

일러두기

대본: 「유메노 큐사쿠 전집11」치쿠마 문고, 치쿠마 쇼보 출판사

1992년 12월 3일 제1쇄 발행

〔〕는 옮긴이가 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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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회색인간 2009/01/03 20:14 #

    아 도구라마구라도 진짜 좋게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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